왜 건축은 '기능'을 중심에 두기 시작했는가?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공간의 혁명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전 인류의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사건이었습니다. 증기기관의 발명, 철강 산업의 발전, 대량 생산 체계의 확립은 생산 방식의 변화만이 아니라, 건축과 도시의 구조까지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기존의 건축은 장식과 상징성을 중시하며 수공예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시작되며 건축은 점차 기술과 기능, 효율과 실용성 중심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근대 건축의 서막이자, 기능주의(Functionalism)라는 새로운 건축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산업혁명이 건축에 미친 영향, 기능주의의 사상적 기원과 철학, 대표 건축가들의 역할, 그리고 기능주의가 오늘날 건축에 남긴 유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산업혁명: 건축 재료와 기술의 대전환
산업혁명 이전의 건축은 대부분 돌, 벽돌, 목재 등의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했고, 수작업 위주의 시공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부터 철강, 유리, 철근 콘크리트 등의 재료가 대량 생산되면서 건축은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철골과 유리의 조합은 넓은 공간을 기둥 없이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된 수정궁(Crystal Palace)는 철골 구조와 유리만으로 지어진 거대한 전시장이며, 이는 산업화 이후 등장한 기능 중심 건축의 상징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부터 건축은 더 이상 장식적인 예술품이 아니라, 산업 기술로 생산되는 구조물, 다시 말해 '기계'처럼 다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능주의의 철학: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기능주의란 건축이나 디자인에서 기능, 즉 용도와 목적에 적합한 형태를 추구하는 사고방식을 의미합니다. 이 철학은 단순히 실용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이 곧 미를 완성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기능주의 사상의 철학적 기반은 19세기 초 고전주의 건축가 카를 프리드리히 쉰켈(Karl Friedrich Schinkel)에게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실용성과 구조적 진정성을 강조하며, 조형미는 용도에 충실한 결과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19세기 후반, 오토 바그너(Otto Wagner)와 알프레드 메셀(Alfred Messel) 같은 진보적인 유럽 건축가들에 의해 구체화됩니다. 바그너는 “예술은 필요에 의해서만 지배된다”라고” 주장했고, 메셀은 실용성과 도시 기능을 고려한 공공 건축 설계를 통해 기능주의의 실천을 보여주었습니다.
기능주의 철학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한 인물은 루이스 설리번(Louis H. Sullivan)입니다. 그는 건축에서 기능과 형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이 명제는 기능주의 건축의 핵심 원칙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건축 교육과 실무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와 순수주의 – 기능으로 조형미를 구현하다
기능주의 사상을 가장 혁신적으로 구현한 대표적 인물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입니다. 그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Machine for Living)”라고 정의하며, 건축을 인간의 삶을 효율적으로 담아내는 구조물로 바라보았습니다.
1920년대 초, 그는 회화 운동인 순수주의(Purism)의 원리를 건축에 도입했습니다. 순수주의는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기하학적 질서와 재료 본연의 속성을 강조하는 시각 언어를 지향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르 코르뷔지에는 콘크리트, 놋쇠, 유리 등의 산업 재료를 사용해 기능성과 조형미를 동시에 구현한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대표작인 사보아 주택(Villa Savoye)은 기능에 충실한 평면 구성, 필로티 구조, 수평 창과 옥상 정원 등의 요소를 통해 기능주의 건축의 전형을 제시했습니다.
바우하우스와 기능주의의 체계화
기능주의 건축이 철학에서 실제 디자인 원칙으로 체계화된 계기는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발족한 바우하우(Bauhaus) 운동입니다. 창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예술, 공예, 건축을 통합해 산업과 예술의 결합을 시도했고, 이는 건축의 대중화와 기능 중심 설계의 확산을 이끌었습니다.
바우하우스는 건축을 단지 조형 예술이 아닌, 사회적이고 기능적인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은 이후 전 세계에 퍼져 근대 건축의 이상을 실현했습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는 "Less is more(적을수록 풍부하다)"는 말로 기능주의의 미학을 정리했으며, 그의 건축은 단순함 속에서 본질을 드러내는 미감을 구현했습니다.
도시와 주거의 재편: 기능주의의 확장
기능주의는 단지 건물 하나의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도시 구조와 주거 환경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고층 아파트와 대규모 녹지, 직선 도로로 구성된 이상 도시를 제안했고, 이는 후일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나 전후 유럽의 신도시 설계에 반영되었습니다.
공공성과 위생, 효율을 중시한 기능주의 도시는 현대 도시 계획의 기초를 마련했고, 특히 대량 주택 공급이 필요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기능주의는 효과적인 해법으로 작용했습니다.
기능에서 시작된 근대, 그 이후의 건축을 바라보다
근대 건축은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의 격변 속에서 태어났으며, 새로운 재료와 기술,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기능주의라는 철학을 만들어냈습니다.
기능주의는 "공간은 사람을 위한 것이며, 건축은 삶을 담는 구조"라는 본질적인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미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능에 충실한 설계 속에서 미는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사고방식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설득력을 갖습니다.
물론 기능주의는 20세기 후반 들어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등의 반발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능주의가 보여준 합리성, 구조적 정직성, 공공성에 대한 배려는 지금도 건축의 핵심 가치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건축이 단지 아름다움을 쫓는 예술이 아니라, 삶을 담고 사회를 조직하며, 시대를 반영하는 총체적 행위임을 일깨워준 기능주의. 그것이 바로 근대 건축이 시작된 이유이자, 여전히 되새길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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