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건축이 세계를 바꾸다
건축은 단순히 공간을 설계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우리가 함께 머무르는 세상의 철학이 담긴 예술이자 과학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건축의 사회적 가치와 예술성을 평가하고,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상은 무엇일까요? 바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입니다.
이 상은 매년 한 명 또는 팀에게 수여되며, 그들의 건축적 업적과 철학, 사회적 기여를 기념하는 자리입니다. 단순히 유명한 건축가라서 수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환경, 시대를 깊이 있게 반영한 건축 정신을 구현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입니다.
이 글에서는 프리츠커상의 탄생 배경, 수상 기준, 그리고 이 상이 건축계와 대중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프리츠커상에 담긴 건축의 철학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은 건축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시작은 1979년, 미국의 하얏트 호텔 그룹 창립자인 제이 프리츠커(Jay A. Pritzker)와
그의 부인 신디 프리츠커(Cindy Pritzker)에 의해 제정되었습니다.
프리츠커 부부는 건축이 단지 공간을 짓는 기술이나 장식 예술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문화적 동력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노벨상이 과학과 평화에 대한 공헌을 기리듯, 건축 역시 인류에 대한 지속적인 기여를 하는 예술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하얏트 재단은 프리츠커상을 통해 “건축 예술을 통해 인류와 건축환경에 지속적인 기여를 한 살아 있는 건축가”를 매년 기리기로 결정합니다.
이 상은 특정 국가나 문화권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살아 있는 건축가에게 수여됩니다. 매년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 심사위원단이 수많은 후보자의 작품과 철학, 사회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선정하게 됩니다.
심사의 핵심은 일관된 철학과 실천입니다. 즉, 단순히 뛰어난 몇몇 건축물이 아니라,
한 건축가가 장기간에 걸쳐 보여준 방향성, 가치관, 건축을 통한 메시지가 중점적으로 평가됩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지역성(Locality), 커뮤니티 중심 설계, 공공성 등 보다 사회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기준들이 평가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프리츠커상은 상업적 성공이나 유명세보다, 건축이 사람과 사회, 환경에 남긴 지속적인 가치를 조명합니다. 기후 위기와 도시 불균형, 사회 양극화 문제 속에서, 건축이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도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합니다.
수상자에게는 10만 달러의 상금과 함께, 고대 로마 건축이론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메달이 수여됩니다. 이 메달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비트루비우스가 말한 건축의 3대 원칙 – “견고함(Firmness), 유용성(Utility), 아름다움(Delight)” – 즉, 건축의 본질을 상징하는 상징물입니다.
따라서 프리츠커상은 단순히 “누가 건물을 잘 지었는가”에 대한 경쟁이 아니라, “건축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에 대한 깊은 철학적 논의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고 또 그 가치를 새롭게 제시하는 건축적 나침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대를 반영한 수상자 선정의 흐름과 가치
프리츠커상은 그 수상자 선정 방식에서 포용성과 시대의 흐름을 함께 반영해 왔습니다. 예전에는 유럽과 미국 중심의 건축가들이 주로 수상했지만, 최근에는 개발도상국, 지역사회 중심 건축, 사회적 약자를 위한 건축 활동이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예컨대, 자하 하디드(Zaha Hadid, 2004년 수상)는 프리츠커상 역사상 최초의 여성 건축가 수상자로서, 건축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유려한 곡선미와 미래지향적인 공간 구성으로 건축의 표현 영역을 넓혔으며, 대표작인 MAXXI 국립 21세기 미술관(이탈리아)과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아제르바이잔)는 기능적 건축을 넘어선 예술적 조형성의 건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발크리슈나 도시(Balkrishna Doshi, 2018년 수상)는 인도 내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설계를 통해, ‘건축은 곧 교육이자 복지’라는 메시지를 건축으로 실현한 인물입니다. 현지 재료와 전통 기술을 바탕으로 지역 공동체 중심의 건축 모델을 구축하였으며, 사회적 건축의 대표 사례입니다.
아울러 라카톤 & 바살(Lacaton & Vassal, 2021년 수상)은 기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재사용과 리노베이션을 통해 도시 환경을 재구성하는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 철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접근 방식은 ‘낭비 없는 건축’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현대 도시 문제에 대한 대안적 해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처럼 프리츠커상은 건축이 '무엇을 지었는가' 보다 '왜 지었는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설계했는가’를 묻는 상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이는 건축가의 명성을 넘어서, 건축의 윤리성과 사회적 역할을 더 강하게 조명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프리츠커상의 사회적 영향력
프리츠커상의 영향력은 건축계 내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 상을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며, 더 나아가 정부 정책, 도시 계획, 공공 디자인에도 실질적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노먼 포스터(Lord Norman Foster)나 프랭크 게리(Frank Gehry)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가 수상한 후, 해당 도시의 문화 인프라가 확장되고 건축 관광이 활성화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설계한 미술관, 도서관, 공연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도시의 상징이자 문화 중심지로 기능하게 됩니다.
또한 수상자들의 설계 방식은 젊은 건축가들에게 이론과 실천의 기준점이 됩니다. 프리츠커상 수상작은 대학 건축 커리큘럼에도 반영되며,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실질적 답을 제공하는 교육 자료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프리츠커상은 단순히 한 사람을 기리는 상이 아니라, 건축계 전체의 가치 방향을 제시하는 ‘기준점’이자 ‘거울’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넘어선 건축가의 상
프리츠커상은 단지 세계 최고의 건축가에게 주는 상이 아닙니다. 이 상은 건축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건축가가 인간과 자연을 어떻게 연결하는가에 대한 깊은 질문과 응답의 기록입니다.
수상자들의 작품에는 아름다운 곡선이나 거대한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머무는 공간, 공존하는 방법, 기억을 남기는 건축입니다.
건축은 일상을 담는 가장 오래된 문화이고, 프리츠커상은 그 문화 속에서 사람과 환경, 기술과 예술을 조화롭게 엮어낸 실천가들을 기리는 상입니다.
이제 프리츠커상을 통해 건축이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는 것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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